B2B 영업을 하는 사람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많은 사람이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 텐데 실제로는 자기 회사에 어떤 조직이 있는지, 각 조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강점이 있으며 약점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속된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기는 매우 쉽다. 직원의 역량이 곧 회사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일수록 에이스 몇 명의 손에서 모든 일이 굴러가고 해결되기 때문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조차도 손쉽게 회사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것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는 몇 개, 또는 몇십 개의 부서로 잘게 쪼개져 있는 데다, 각 부서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담당자는 자기 일, 더 나아가서 자기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으므로 회사 전체를 파악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나 B2B 영업 현장에서는 물건, 서비스만이 아니라 회사의 역량까지 상품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구매담당자는 현재 신규 원료를 공급할 회사로 A, B 두 개의 회사를 검토하고 있다. 두 회사에서 제시한 원료는 품질이 완전히 같고 가격도 같다.」
이런 경우 구매담당자는 당연히 그 외의 조건을 보게 된다. A 회사는 평범한 회사다. 특별히 눈에 띄는 장점은 없지만, 반대로 단점도 없다. 반면 B 회사는 자금력이 탄탄해 결제조건이 좋다. 돈을 늦게 줘도 괜찮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부절차가 복잡해서 오늘 발주하면 2일 후에 납품된다.
당신이 구매담당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것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회사라면 2일 전 발주를 감수하고 B 회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원활한 생산을 위해 전날 발주를 선호할 것이다.
어쩌면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B2B 영업 현장에서는 이런 일로 계약 성사 여부가 갈리는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과 가격 외에 우리 회사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인가? 때로는 최첨단 물류시스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엄격한 품질관리일 수도 있다. 정말 사소하게는 ‘널리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라는 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B2B 영업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어떻게 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1. 조직도를 파악하라.
회사를 파악하려면 당연히 조직도부터 파악해야 한다. 회사에 어떤 조직이 있고, 각 조직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무작정 팀 이름과 구성을 외우라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그 부서의 부서장이 누구인지, 핵심 인원이 누구인지 정도는 파악해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다.
2. 결재라인을 확인해라.
결재라인은 단순히 도장 찍는 칸이 아니다. 어떤 부서의 누가 품의서를 기안하며, 어떤 부서의 누가 합의하고 최종적으로는 누가 결재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회사 업무를 파악하는 기본이다. 결재라인에는 회사의 권력관계와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영업사원 A는 거래처에 줄 샘플을 본사로 받기 위해 품의서를 올렸다. 품의서는 A가 소속된 팀장의 결재를 받고 곧장 회계팀으로 넘어갔고, 회계팀 승인이 끝난 후에 물류팀으로 넘어가 품의서 결재가 완료되었다.
어느 회사나 이런 식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비슷하다. A는 영업사원으로서 거래처에 샘플을 전달하기 위해 품의서를 올렸다. 그런데 왜 샘플을 보내줄 물류팀이 아닌 회계팀에 먼저 올렸을까? 그건 이 회사 회계팀의 파워가 강력하다는 의미다.
회사에 따라 권력관계는 천차만별이지만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회계팀의 힘이 세다. 회사는 돈으로 움직이는데, 그 돈의 흐름을 회계팀에서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QA 팀의 힘이 센 회사도 있다. 주로 판매하는 상품의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들인데 식품회사 중에 종종 QA 팀이 센 회사가 있다.
이처럼 단순한 결재문서 하나로도 회사의 권력관계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3. 업계의 표준을 파악해라.
내 회사의 역량을 파악한다는 것은 내 회사의 기준과 업계의 표준 사이에 얼마만 한 간극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상품을 만드는 회사는 여러 곳 있지만 평균적으로 0.1%가량의 불량률을 인정한다. 그러나 K 회사는 검수팀의 엄격한 관리를 통해 불량률을 0.08%까지 줄였다.」
이 경우 A 상품을 구매하는 입장이라면 0.1% 정도의 불량률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구매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량률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회사들이 전부 업계 표준인 불량률 0.1%를 제시할 때, K 회사로부터 0.08%의 불량률을 제시받는다면 누굴 선택할지는 너무 명백하다.
이와 같은 업계의 표준은 따로 정리된 형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장을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나 빨리 물건을 납품할 수 있는가. 불량률, Loss는 얼마나 인정되는가. 대금 결제는 통상 어느 정도인가 등 명문화되지 않더라도 업계에서 당연하게 인정되는 기준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 회사의 기준이 그러한 업계의 표준과 비교해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납품일은 업계 표준을 맞출 수 있지만 불량률은 업계 표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조건은 다 맞출 수 있는데, 내부 의사 결정이 너무 느려 긴급 발주에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미리 파악해야 제대로 된 B2B 영업을 할 수 있을뿐더러, 물건이 아닌 솔루션을 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내 회사의 역량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일 터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단 B2B 영역뿐만 아니라 영업 자체가 ‘문제’와 ‘해결’의 연속이다. 아무 일 없이 알아서 술술 물건이 판매되면 참 좋겠지만, 그런 날은 1년에 며칠 안 된다. 오늘은 이런 문제가 생기고, 내일은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영업사원은 그런 문제를 슬기롭고 유연하게 해결하는 사람이다.
내 회사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해결책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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