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회사의 꽃은 “영업”이다.
예전처럼 상품이 부족해서 만드는 족족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아무리 우수한 상품을 개발해도 그와 비슷한 상품을 구하기는 너무나 쉽다. 심지어 지금은 해외의 상품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개발팀은 대체로 영향력이 적다. 나름대로는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하지만, 곧 경쟁사에서 그와 유사한 상품을 즉시 출시하기 때문이다.
상품을 기획하고 판촉 계획을 세우는 마케팅은 얼마 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이제는 점점 힘을 잃어간다. 마케팅은 돈 잡아먹는 하마다. 비용을 가장 많이 쓰는 부서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범위가 넓다.
기업 대 기업의 거래. 즉, B2B 영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이 경우엔 개발팀도 마케팅팀도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기업과 기업의 거래에선 서로의 조건을 맞추고, 가격과 공급 물량을 협상하고 조율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사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B2B 영업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개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B2C 영업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상대만 설득하면 되지만, 기업을 상대하는 B2B 영업은 결정 과정에 수많은 사람이 관여하기 때문에 방법도 절차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사람 중에는 영업 담당자가 실제로 만나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마저 존재한다.
이렇게 B2B 영업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B2B 영업 전략에 관한 책이나 이론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나는 영업할 때, 그런 이론서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비즈니스의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B2B 영업은 이론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무척 크다. 가끔은 ‘도대체 이 사람, B2B 영업은 해 보고 이런 말을 쓴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 나는 생각이 날 때마다 내가 B2B 영역에서 영업하며 겪은 것, 배운 것, 생각한 것을 토대로 좀 더 실전적인 B2B 영업 전략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다. 아무래도 내가 다녔던 회사가 식품회사였다 보니 다른 분야의 영업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가능하면 어느 분야에서나 적용할 수 있도록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언급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이것이다.
물건을 파는 영업사원 VS 솔루션을 파는 영업사원
사실 이 주제는 이미 기존에 출판된 B2B 영업 전략 이론서에 수도 없이 언급된 주제다. 그러나 그들 이론서의 접근 방식은 조금 이상하다. 참고할 겸, 이 주제에 관한 글 하나를 가져와 봤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어떻게 고객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판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는 결과에 있습니다. 데이터, 성공 사례, 직접적인 지식을 통해 잠재 고객에게 여러분의 제품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을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세요.』
- https://www.salesforce.com에서 발췌
글자를 모르지 않으니 읽을 수는 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론에 치우친 뜬구름잡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일단 글에서 말하는 ‘고객’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내 앞에 앉아 상담하는 구매담당자가 고객인가? 아니면 그 위에 있는 결재권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 기업을 말하는 것일까? ‘고객’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방법도 알 수 없다.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라는 말도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삶을 변화시키라는 것일까? 직장에서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게 도우라는 말일까?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 뜻도 아니겠지만 설명이 모호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재 시중에 출판된 B2B 영업 전략에 관한 이론서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마치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처럼 내용이 모호해서 알맹이가 없다. 그래서 영업도 안 해 보고 쓴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솔루션을 판다.’라는 말의 의미를 사례를 통해 좀 더 쉽게 알아보자.
여기 영태, 기훈. 두 명의 B2B 전담 영업사원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니지만, 취급하는 품목이 똑같다. 보통 B2B 영업은 원자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케이크에 넣을 생크림으로 하겠다. 두 회사가 취급하는 생크림은 전부 국내산이며, 가격과 품질이 대동소이하다.
※ 실제로 경쟁하는 두 회사의 물건이 가격과 품질에서 비슷한 경우는 대단히 많다.
먼저 영태의 경우를 보자.
영태 : “안녕하세요. 구매담당자님. 생크림을 찾고 계신다면서요? 이번 기회에 저희 생크림 한 번 써 보시죠? 제가 좋은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구매담당자 : “아직 가격을 결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물량도 확정이 안 됐거든요.”
영태 : “에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저희가 물량 상관없이 좋은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구매담당자 : “예. 뭐. 일단 샘플하고 견적 주시죠.”
영태 : “그러실 줄 알고 미리 다 가져왔죠. 여기 있습니다.”
첫 미팅 때 샘플을 제시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구두 견적이 아닌 견적서까지 제시하는 건 흔하지 않다. 기초 견적이라도 외부에 견적서를 내려면 내부 결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영태는 경험도 있고 부지런한 영업사원인 것을 알 수 있다. B2B 전담 영업사원이 경험이 쌓이면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기훈의 사례를 보자.
기훈 : “안녕하세요. 구매담당자님. 생크림이 필요하시다면서요?”
구매담당자 : “예. 그렇게 됐습니다.”
기훈 : “A사는 원래 생크림 많이 쓰시지 않습니까? 쓰던 생크림은 어쩌시고요?”
구매담당자 :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쓰던 거 쓰면 여러 사람 편할 텐데. 품질안전팀에서 기존 생크림은 절대 안 된다고 난리를 쳐서요.”
기훈 : “왜요? 스펙이 다릅니까?”
구매담당자 : “그건 아니고요. 원료 입고할 때 불량률이 좀 높게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기훈 : “생크림이 쉽게 상한다는 걸 품질안전팀에서 모를 리는 없고. 도대체 뭐 얼마나 높게 나오길래 구매처까지 바꾸려고 하나요?”
구매담당자 :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심각하기는 합니다. 오래 거래한 업체다 보니 컨트롤도 잘 안되나 보더라고요.”
기훈 : “아. 오래 거래하면 그런 문제가 종종 있죠. 고민이 많으시겠네요.”
구매담당자 : “차라리 더 싼 걸 사 오라고 하면 낫겠는데 불량률 낮은 걸 구해오라니. 그런 거 계약서에 박으면 무조건 단가 올리자고 할텐데 정말 죽겠네요.”
좀 극단적인 비교지만 실제 영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제 영태와 기훈의 영업 방법을 본격적으로 비교해보자.
대부분은 영태처럼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구매담당자에게 샘플과 견적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래야 자기 샘플과 견적이 기준이 되어 다른 회사의 물건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태는 나름의 경험을 통해 속도전으로 승부했다.
반면 기훈의 영업 전략은 다르다. 생크림의 구매처를 바꾸려고 한다는 걸 알고 왔으면서도 견적은커녕 샘플도 내지 않았다. 대신 왜 갑자기 생크림의 구매처를 바꾸려고 하는지를 물었다.
두 사람의 영업 전략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상대’는 계약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 전부를 의미한다.
그냥 보면 괜히 뜬구름이나 잡는 것 같지만 기훈의 영업 전략은 굉장히 효과가 좋다. 기훈은 이 전략을 통해 영업에 필요한 세 가지 포인트를 알아냈다.
1. 기존에 납품받고 있던 생크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2. 그 문제를 누가 제기했는가?
3. 그로 인해 구매담당자는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가?
기존 A사가 납품받던 생크림은 불량률이 높았다. 물론 불량이 발생한 원료는 사용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보상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에 몇 톤씩 들어오는 원료에서 불량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품질안전팀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불량이 늘어나는 만큼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제품 개발을 기회 삼아 품질안전팀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지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이 계약이 이뤄지기 위해선 품질안전팀의 불만이 해결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의사 결정의 키는 품질안전팀이 쥐고 있다.
그러나 영업사원이 직접 품질안전팀을 만나 설득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많다. 여기서 그 문제를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다 떠나서 구매담당자를 건너뛰면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결국 B2B 영업사원은 아무리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라도 구매담당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기훈의 경우, 상담을 통해 구매담당자의 고충까지 알아냈다. 구매담당자는 ‘불량률이 낮은 생크림을 구하되, 납품단가는 변동이 없어야 하며, 불량률에 관해 계약서에 명시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기존 업체는 납품한 생크림에서 발생한 불량을 잘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적당히 처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원가 계산에 반영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서 납품 가격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약서에 불량률을 기재하면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결재권자도 그런 견적서에 사인하지는 않기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불량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가격은 당연히 올라간다. 이건 상식이다.
바로 이것이 B2B 영업은 ‘물건’이 아닌 ‘솔루션’을 판다고 말하는 이유다.
영태는 경험도 있고 부지런한 영업사원이지만 오로지 물건을 파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는 구매담당자가 새로운 생크림 공급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샘플과 견적을 들고 달려왔지만, 정작 상담에서는 왜 새로운 생크림 공급처를 찾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시작된 일의 결과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시작은 할 수 있어도 협상 과정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그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기훈은 첫 상담에서 상대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매출이니 실적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물건’을 팔아야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엔 해결해야 할 숱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이 경우엔 높은 불량률에 불만을 품은 품질안전팀이 문제의 핵심이다.
어느 한 팀이 다른 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팀 대 팀의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품질안전팀의 불만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만약 구매팀에서 무시한다면 앞으로 품질안전팀은 구매팀의 업무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구매팀에서도 품질안전팀의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마냥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엔 구매팀도 고충이 있다. 구매팀의 핵심 평가지표는 ‘구매단가’다.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살수록, 구매팀의 실적이 오른다. 그런 상황에서 불량률 때문에 구매단가를 올려버리면 담당자와 더불어 팀 실적이 망가진다. 깊게 파고들면 이런 문제까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기훈은 구매담당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석해서 내부에 보고했고, 물류팀, 품질안전팀, 구매팀 등 관련된 모든 팀을 총동원해서 낮은 불량률을 보장하면서도 가격은 낮게 할 방법을 모색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덤비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찍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기훈은 영태보다 먼저 해결책을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상대는 물건을 구매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거나 싼 것’을 구매하는 일은 없다. 구매에는 언제나 여러 조건이 붙기 마련이고, 종종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잠재된 경우가 많다. B2B 영업의 핵심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데 있다. 솔루션을 판다는 건 그런 의미다. 어떤 경우에는 사용량을 예상할 수 없어서 문제인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엔 지금 당장 급하게 많은 양의 물건을 받아야 해서 문제인 경우도 있다.
B2B 영업에선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이다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이다. 직접 구매를 담당하는 구매팀이 있고, 불량을 체크하는 검수팀이 있고, 그 밖에도 생산팀, 품질안전팀, 개발팀, 마케팅팀, 물류팀 등 한 가지 상품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연루되어 있다. 그만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다양하다.
그래서 B2B 영업의 시작은 반드시 ‘상대가 가진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솔루션’을 판다라는 것은 ‘상대의 문제를 파악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문제로 인해 구매담당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파악해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 B2B 영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주제인 솔루션 영업에 관해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 좀 더 쉽게 알아보았다.
영업은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특히 B2B 영업은 들이대는 태도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B2B 영업의 핵심이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하면 해결책은 당연히 알아낼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설령 계약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도중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혀 우왕좌왕하다가 협상이 결렬될 수밖에 없다.
B2B 영업은 ‘물건’이 아닌 ‘솔루션’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솔루션을 팔기 위해서는 상대가 가진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니 다짜고짜 샘플, 견적 들이밀지 말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담해라. 그래야 숨겨진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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